
🎬 극장으로 향한 이유
최근 들어 유난히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영화가 많았다. 원래 극장에 잘 가지 않는 편이다. 누가 끌고 가거나, 예고편이 정말 재밌어 보이거나, 아니면 즐겨보는 평론 유튜버가 추천하지 않는 이상은 발걸음을 옮기기 어렵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극찬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고, 제목부터 예측이 불가능한 이 작품이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걸까 궁금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결국 호기심이 나를 극장으로 데려갔다.
🧱 실직에서 시작된 불안의 서사
영화는 제지공장에서 25년을 근속한 만식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성실하게 일하며 남 부럽지 않게 살아온 그에게, 하루아침에 실직이 찾아온다. 가족의 생계가 흔들리면서 삶 전체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가장으로서의 ‘자존심 붕괴’였다.
만식은 제지공장이라는 공간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모두 걸었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뼛속까지 ‘제지맨’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이 가고 싶은 공장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없애면 된다는 끔찍한 생각에 빠진다. 그의 광기가 서서히 현실을 덮어가기 시작한다.

🎭 이해보다 해석이 앞선 영화
박찬욱 감독의 연출은 여전히 섬세하지만, 이번 작품은 관객에게 작품의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보다는 ‘해석’을 요구한다. 상징과 장치가 곳곳에 깔려 있어서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나 역시 영화를 보고 나서 결국 유튜브에서 해설 영상을 찾아봤다. 직접 캐치한 건 전체의 절반 정도였을까.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는 재미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감독이 말했던 대중적인 영화라는 말과 달리 “왜 이렇게까지 어렵게 만들어야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일까, 다회차 관람을 전제로 한 영화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다시 볼 만큼의 흡인력은 크지 않았다. 이야기의 매력도, 인물의 설득력도, 모두 거리감이 있어 작중 인물에 대해 애정을 느끼기 어려워 그랬다.
💸 현실과의 거리감
만식은 설정상 ‘평범한 소시민’을 대변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생활수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민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실직의 절박함이 잘 와닿지 않는다. 나 역시 취업 준비 시절의 막막함과 불안을 겪어봤지만, 그게 누군가를 해칠 정도의 극단적인 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더 나아가, 주인공 자체가 유년시절 그리 유복한 삶을 지내왔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을 충분히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는 점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반적으로 만식의 분노와 광기가 설득되지 않으니, 영화의 몰입도 보다는 현실감이 덜했다. 만약 가족이 더 현실적으로 그려졌거나, 실직 이후의 심리 변화가 세밀하게 묘사되었다면 조금은 다른 감정선이 만들어졌을 것 같다.
🧩 다른 영화들의 그림자
보는 내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마더가 떠올랐다. 사회적 계급과 가족이라는 소재, 그리고 블랙 코미디적인 시선까지. 마치 두 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질감이었다. 물론 의도적인 오마주일 수도 있겠지만, 박찬욱 감독 특유의 독창적인 색은 이번엔 다소 옅게 느껴졌다. 어쩌면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대중적인 영화'라는 것이 이런 부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 남는 건 감탄보다 피로감
결국 <어쩔 수가 없다>는 ‘이해하는 영화’보다는 ‘해석하는 영화’에 가깝다. 평론가들이 왜 열광했는지는 알겠지만, 일반 관객이 재미로 보기엔 조금 버거운 작품이다. 그렇다고 흥행에 실패한 작품일까? 아마도 국산 영화를 좀 더 선호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아닐 것 같다. 그리고, 감독이 숨겨둔 의도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즐거우니까 손익 분기점은 넘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매력이 모든 관람객에게 통하는 건 아니니 모두에게 추천하기 괜찮은 영화라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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