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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투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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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는 투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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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T야 밈을 의미하는 스마트폰 케이스 사진

  “오빠 혹시 T야?” 대 혈액형 강점기 시대가 종료되고, 대 MBTI의 시대가 도래하며, 가장 많이 듣는 소리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나온 유행어 중 가장 폭력적인 표현이라 생각한다. 해당 표현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 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상의 특이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금처럼 사회생활을 영위하기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어쩌다 ‘T야?’라는 소리를 듣게 될 정도로 메마른 사람이 되었는지 생각해봤다.

가수 god 어머님께 플래시 영상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 전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나’는 꽤나 감수성이 풍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창 시절 당시 flash로 만든 뮤직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는데, 그 때 1세대 아이돌 god의 노래인 ‘어머님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갑작스레 우는 나를 보고 주변 친구들이 당황해 하면서도 별난 놈 취급을 했다. 더불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님 귀에도 들어가, 학교에서 그러지 않는게 좋다고 나를 타일렀던 것이 기억난다. 경험을 바탕으로, 난생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몸소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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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울면 안 돼? 카드 뉴스 <출처 : 2015_연합뉴스 카드뉴스>

  사회생활이라고는 유치원 밖에 없었던 시절을 지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단언컨대 ‘남자는 울면 안된다’라는 말로 기억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보다는 본격적인 감정 죽이기에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들의 시선이 많은 사회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곧 사회적 죽음을 나타낼 정도로 무서운 일이었다. 학창시절을 보내며 누구보다도 더 내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투구 쓰기’ 연습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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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남자는 갑옷을 입는다 중 <출처 : 2018_김댐 作>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을 무렵 나를 비롯한 다른 남성들을 보았을 때 저마다 개성 있는 투구를 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로 지낸 시절이 길어서 그런지,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할 때가 많았다.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 유학길에 올랐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올 때에도 많이 느꼈다. 외국인 친구들과 마지막 만남을 가지는 그 날에도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종종 그 때를 떠올리면 내 감정에 더욱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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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선입견 뉴스 헤드라인 <출처 : 2020_오픈애즈_트렌드모니터>

  감정이 거세 당한채로 지내온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아직도 투구를 벗고 온전한 내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서투르기만 하다.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내가 쓴 이 투구의 무게가 점차 무거워 짐을 느낀다. 이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문화에서 가지는 ‘나이’라는 무게감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온전히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 또는 시간 속에서만 투구를 벗은 채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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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레고 피규어 모습

  가끔은 온라인 상에서 보이는 자기의 감정 표현에 솔직한 외국인들 영상을 보면 왠지 모를 부러운 감정이 든다. 요즘은 그래서 어느 정도의 연습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적어도 외국인 친구들과 있을 때에는 마음 편히 투구를 벗고 얘기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국내에서 보는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게 감정적으로는 더욱 솔직하게 대하고는 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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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둔 중세 시대 헬멧 모습

  다가올 미래의 내 투구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녀석이 더 무거워질지 가벼워질지 사실 단언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의 확신이 있다면 벗어도 괜찮을 때에는 무거운 투구를 내려 놓으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나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도 어찌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순수한 활동 중 하나란 생각이 든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바쁜 사회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을 오랜만에 정리해서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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